에모지 극사실주의

, by lifthrasiir

2020년은 유니코드 6.0 표준에 에모지가 들어간지 딱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그림 문자인 에모지가 왜 유니코드에 꼭 들어가야 하는 건지, 왜 일본 통신사 3사는 어쩌다가 국제 표준을 망가뜨리는지 비판의 목소리가 컸지만, 10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이제 어떻게 에모지 없이 의사 소통을 한 건지 신기할 정도로 익숙해져 있지요.

에모지는 기술적으로는 (색깔 있는) 그림으로 출력될 수"도" 있는 표준화된 문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에모지가 널리 쓰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에모지 그림에 요구되는 것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표준화 과정에서 성별·외모·국가에 대한 포용성을 요구받았고, 어떻게 그 산을 넘기고 나니 이제 그림이 이상하다는 불평이 여기 저기서 들려 옵니다. 이 글에서는 에모지에 요구되는 극사실주의의 사례를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에모지는 한국어에서는 보통 영어 발음을 따라 "이모지"라 부르고 있지만, 글쓴이는 1. 일본어 絵文字에서 온 낱말을 굳이 영어를 거쳐 발음을 왜곡시킬 필요가 없다는 이유, 그리고 2. 여전히 에모지를 필요악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최근 언어 추세를 따라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햄버거와 맥주

안드로이드 8.0까지 햄버거 에모지에는 치즈가 고기 패티 아래에 놓여 있었고, 맥주잔에는 맥주와 맥주 거품 사이에 공간이 비어 있었습니다. 이 괴이한 햄버거와 맥주잔에 사람들의 수정 요구가 빗발치자 당시 구글 CEO인 선다 피차이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해서 고치겠다고까지 공언한 끝에 안드로이드 8.1에서 고쳐졌지요.

나비

유니코드 참조 글리프와 모든 에모지 벤더에서 나비의 윗날개는 그 밑부분이 몸통과 수직으로 그려져 있는데, 사실 살아 있는 나비는 보통 윗날개가 그보다 쳐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죽은 나비를 그리지 말아 달라는 불평이 오랫동안 있어 왔습니다만 별 소득은 없는 것 같네요.

가위

유니코드 가위 에모지는 ITC Zapf Dingbats 글꼴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실제로 확인하면 알 수 있지만 이 글꼴에서 가위는 손잡이를 꽉 잡아도 날이 제대로 닫히지 않습니다. 정말로 쓸 수 있는 가위보다는 딩뱃으로서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글리프를 선택한 것이지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 이 글자가 유니코드 에모지로 편입되면서, 가위 에모지가 이 잘못된 가위 디자인을 그대로 답습하게 됩니다. 사실 예전의 일본 통신사 에모지는 해상도가 낮은 대신 애니메이션이 있었기 때문에, 가위가 좀 이상하게 보여도 애니메이션으로 메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 없는 현대 에모지에서는 꼼짝 없이 잘못된 가위가 될 수 밖에 없죠.

에모지 평가 시리즈

나비 에모지는 죽은 나비를 그리지 말아 달라는 좀 진지한 얘기긴 하지만, 곤충학자가 개미 에모지를 평가하는 글에서 시작된 에모지 그림 평가 드립도 있습니다.